15년차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문득 그런 불안감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이제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세상의 규칙이 다 바뀐 것 같은 기분. 익숙했던 업무 방식이 '옛날 방식' 취급을 받고, 새로 등장한 개념들은 따라가기 벅찰 때의 그 막막함 말이죠.
제가 PMP 자격증을 준비하며 PMBOK 가이드를 다시 펼쳤을 때 딱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분명 익숙했던 '5대 프로세스 그룹'과 '10대 지식 영역'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더군요. "어라, 내가 알던 게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에 마음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열심히 외운 시험 범위가 '이번 시험부터 출제되지 않습니다'라는 통보를 받은 것처럼요. 😊
하지만 이내 깨달았습니다. 이건 단순히 시험 범위가 바뀐 게 아니라는 걸요. PMBOK 7판의 변화는, 오늘날 우리가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시장과 고객의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시대. 이제는 단순히 정해진 절차를 잘 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강력한 메시지였죠. 오늘은 저처럼 당황했을, 혹은 앞으로 당황할지도 모르는 동료 직장인들을 위해 PMBOK 7판이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가치를 위해" 일하는 시대 🤔
가장 큰 변화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프로세스(Process) 중심에서 원칙(Principle) 중심으로'의 전환입니다. 이전 6판까지의 PMBOK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이런 절차(Process)들을 따라야 해'라고 말하는 처방전(Prescriptive) 같았다면, 7판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이런 원칙(Principle)들을 기억하고 상황에 맞게 최선의 길을 찾아가'라고 말하는 나침반과 지도에 가깝습니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세상이 그만큼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제조업 시대처럼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환경이라면,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고객의 요구는 시시각각 변하고, 새로운 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옵니다. 이런 환경에서 모든 프로젝트에 똑같은 '절차'를 들이미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을 낳게 되죠.
그래서 PMBOK 7판은 프로젝트 관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정해진 절차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Value)를 전달하는 것'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단순한 산출물(Output)을 넘어, 고객과 조직에 실질적인 이익과 성과(Outcome)를 가져다줘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N년차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멋진 보고서를 만들어도, 그게 실제 매출이나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바로 그 '가치'에 집중하자는 것이 7판의 핵심 철학입니다.
길을 안내하는 12개의 별: 프로젝트 관리 원칙 📊
그렇다면 '가치'라는 목표를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PMBOK 7판은 그 길을 안내하는 12가지의 프로젝트 관리 원칙(Project Management Principles)을 제시합니다. 과거 6판의 49개 프로세스를 달달 외우던 것에 비하면, 훨씬 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입니다. 12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스튜어드십: 성실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청지기가 되라.
- 팀: 협력적인 프로젝트 팀 환경을 조성하라.
- 이해관계자: 이해관계자와 효과적으로 교류하라.
- 가치: 가치에 집중하라.
- 시스템적 사고: 시스템의 상호작용을 인식하고 대응하라.
- 리더십: 리더십을 발휘하라.
- 테일러링: 상황에 맞게 조정하라.
- 품질: 프로세스와 결과물에 품질을 내재화하라.
- 복잡성: 복잡성을 탐색하고 다루라.
- 리스크: 리스크에 대한 기회와 위협에 대응하라.
- 적응성 및 회복탄력성: 변화에 대한 적응성과 회복탄력성을 갖춰라.
- 변화관리: 변화를 통해 목표한 미래 상태를 달성하라.
어떤가요? '착수-기획-실행-감시 및 통제-종료' 같은 절차적 언어 대신,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이는 마치 회사에서 일 잘하는 김 부장님의 업무 철학을 정리해 놓은 것과 같습니다. 김 부장님은 모든 일에 똑같은 절차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가치)', '누구와 협력해야 하는가(이해관계자, 팀)', '어떤 변수가 있을까(복잡성, 리스크)'를 먼저 고민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죠. 12가지 원칙은 바로 그런 '일잘러'의 내재된 행동 규범을 명문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까?: 8가지 성과 영역 ⚙️
12가지 원칙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라면,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 집중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8가지 성과 영역(Performance Domains)이 제시합니다. 성과 영역은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반드시 관리하고 집중해야 하는 8개의 상호 연관된 활동 그룹입니다.
- 이해관계자 (Stakeholders): 프로젝트에 영향을 주거나 받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관리합니다.
- 팀 (Team): 프로젝트 팀의 역량을 개발하고 높은 성과를 내도록 이끕니다.
- 개발 방식과 생애주기 (Development Approach & Life Cycle): 프로젝트 특성에 맞는 개발 방식(예: 폭포수, 애자일, 하이브리드)을 선택하고 생애주기를 관리합니다.
- 기획 (Planning):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활동과 노력을 조직화합니다.
- 프로젝트 작업 (Project Work): 실제 프로젝트 업무를 수행하고 자원을 관리하며 학습 문화를 조성합니다.
- 인도 (Delivery): 프로젝트의 범위와 품질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 측정 (Measurement): 프로젝트 성과를 평가하고 계획대로 진행되는지 추적하여 의사결정을 돕습니다.
- 불확실성 (Uncertainty):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다루고 기회를 포착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8가지 영역이 순서대로 진행되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프로젝트 기간 내내 이 8가지 영역은 서로 영향을 주며 동시에 관리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획'을 하다가 새로운 '리스크(불확실성)'가 발견되면 '이해관계자'와 논의해서 '개발 방식'을 변경해야 할 수도 있죠. 이전처럼 단계별로 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스템으로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입니다.
나만의 공구함: 모델, 방법, 산출물 🌱
자, 이제 원칙(마음가짐)과 성과 영역(집중할 곳)을 알았습니다. 그럼 실제 업무는 어떤 도구로 해야 할까요? PMBOK 7판은 이 부분에서 엄청난 자율성을 부여합니다. 바로 '모델, 방법, 산출물(Models, Methods, and Artifacts)'이라는 개념을 통해서입니다.
과거 6판에서는 각 프로세스마다 투입물, 도구 및 기법, 산출물(ITTO)이 거의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7판에서는 특정 도구나 기법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프로젝트 관리자가 사용할 수 있는 수많은 '공구'들을 보여주고, "당신의 프로젝트 상황과 특성에 맞는 최적의 공구를 직접 선택해서 사용하세요"라고 말합니다.
- 모델(Models): 어떤 것을 설명하거나 시각화하는 데 사용하는 사고 전략 (예: 터크만 사다리, 칸반 보드)
- 방법(Methods):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 (예: 데이터 수집 및 분석, 추정, 회의)
- 산출물(Artifacts): 프로젝트 과정에서 생성되는 문서나 결과물 (예: 프로젝트 헌장, 리스크 목록, 요구사항 문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PMBOK 가이드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팀이 애자일(Agile) 방식으로 일한다면 스크럼이나 칸반을 사용하면 되고, 예측 가능한 건설 프로젝트라면 전통적인 폭포수(Waterfall) 모델의 도구들을 활용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왜' 이 도구를 사용하는지, 이 도구가 프로젝트의 '가치' 창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프로'는 정해진 레시피만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결국 PMBOK 7판으로의 변화는 '레시피를 따라 하는 요리사'에서 '요리의 원리를 이해하는 셰프'로의 성장을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 이상 정해진 절차의 안정감 뒤에 숨을 수 없게 되었지만, 대신 프로젝트의 본질에 집중하며 더 큰 자율성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N년차 직장인들의 커리어 성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익숙한 업무 방식에 안주하기보다,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나만의 '원칙'과 '도구'를 갖춰 나갈 때,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오늘 알아본 '12가지 관리 원칙'에 대해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실제 회사 생활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 원칙들을 적용하며 '일잘러'로 거듭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회사에서 '정해진 프로세스'를 따를 때와 '원칙에 기반해 자율적으로' 일할 때, 어떤 경험이 더 기억에 남으시나요? 여러분의 경험을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자주 묻는 질문 (FAQ) ❓
Q1. 그럼 PMBOK 6판 지식은 이제 완전히 쓸모없어진 건가요?
A1. 아닙니다. 6판의 상세한 프로세스와 도구 및 기법(ITTO)들은 여전히 매우 유용한 지식 자산입니다. 7판에서는 이것들이 '모델, 방법, 산출물'이라는 더 큰 개념의 일부로 포함되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즉, 7판이 '무엇을'과 '왜'에 집중한다면, 6판의 내용은 '어떻게'에 대한 구체적인 참고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Q2. PMP 시험도 당연히 7판 기준으로 바뀌었나요?
A2. 네, 맞습니다. 현재 PMP 시험은 7판의 철학인 원칙과 성과 영역 기반으로 출제됩니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했는지 묻기보다는, 특정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기반해 판단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묻는 시나리오 기반 문제가 주를 이룹니다.
Q3. 12가지 원칙과 8가지 성과 영역, 이거 다 외워야 하나요?
A3. PMP 시험을 준비하신다면 주요 키워드는 익숙해져야겠지만, 핵심은 '암기'가 아닌 '내재화'입니다. 각 원칙과 영역이 의미하는 바를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 경험과 연결하여 "아, 이게 그 원칙을 적용한 사례구나"라고 깨닫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Q4. PMBOK 7판은 애자일(Agile) 방법론과 같은 건가요?
A4. PMBOK 7판은 특정 방법론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자일, 하이브리드, 폭포수 등 다양한 개발 방식을 포용하는 상위의 프레임워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개발 방식을 선택하든 12가지 원칙과 8가지 성과 영역은 동일하게 중요하며, 선택한 방식에 맞게 '테일러링(조정)'하여 적용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Q5. 이 변화가 현업 프로젝트 관리자(PM)에게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무엇인가요?
A5. 단순히 '프로세스 관리자'나 '간트 차트 전문가'에서 벗어나, 프로젝트의 비즈니스 '가치'를 책임지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더 넓은 시야로 시스템 전체를 보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팀과 이해관계자를 이끌어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